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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택평화센터 2008-02-10 13:43:22 | 조회 : 7578
제      목  [인터뷰] 칠순의 '혁명가' 문정현 신부_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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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이제 낮은 곳에서 다시 시작하자"  
  [인터뷰] 칠순의 '혁명가' 문정현 신부  

  평생을 아스팔트 위에 바친 칠순의 노신부를 찾아가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2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보다 더 민중과 눈높이를 맞추며 살아가는 이는 없는 탓에, 갈 길을 잃고 헤매는 진보·개혁 세력을 대신해 '돌아온 탕자'처럼 다시 문정현 신부를 찾았다.
  
  문 신부는 지난 24일 전라북도 익산 '작은 자매의 집' 원장직을 은퇴한 이후 전북 군산에 자리를 잡았다. 군산, 1997년 문 신부가 처음 '미군기지 반대 운동'을 시작한 곳이다. 문 신부는 이곳에서 출발해 10년간 서울, 매향리, 파주 스토리 사격장, 평택 대추리 등을 거쳐 다시 군산으로 돌아왔다.
  
  공교롭게도 그 10년은 한나라당이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부르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와 겹친다. 많은 사람이 진보·개혁 세력의 집권을 자축할 때도 문 신부는 아스팔트에 있었다. 그 곳에서 그는 함께 싸웠던 이들이 '낮은 곳' 따위는 잊고 '패거리'가 되는 걸 지켜봤고, 또 그 자리에서 그들을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이어왔다.
  
  그렇게 10년이 지났다. 참담하게 패배한 그들은 갈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 그러나 문 신부는 다시 출반선에 섰다. 문 신부는 이해찬, 김근태, 임채정, 이철 씨 등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알 만한 민주화 인사를 꼽으며 "10년 헛살았다"고 단언했다. 찬란한 민주화 운동의 후광을 업고 정치를 했지만 무엇을 했느냐는 힐난이다.
  
  이들의 과오 탓에 결국 이명박 시대가 열렸다. 문 신부는 이런 이명박 시대에 불안해하는 이들에게 이렇게 당부한다. "시간을 가져라."
  
  문 신부는 "언제 정치가 민중의 아픔을 보듬은 적이 있었는가", 하고 묻는다.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 농민, 도시 빈민 등 우리 사회의 가장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 "다시 시작하자"고 말한다.
  
  "민중이 '경제논리'에 휩쓸려 이명박 정권을 선택했지만 머지않아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라고 깨우칠 때가 온다. 그 때 깨우친 그들의 힘은 엄청날 것이다. 마침 이명박 정부가 무리하게 밀어붙이는 엄청난 일들이 이런 '각성'을 앞당길 것이다."
  
  문 신부와의 인터뷰는 지난 30일 문 신부의 집에서 이뤄졌다. 지난 10년간 문 신부를 볼 수 있었던 매향리나 대추리에서처럼 군산에서도 미군 전투기의 시끄러운 소음이 연이어 들렸고 지평선 멀리에는 예의 그 '기름탱크'를 볼 수 있었다.
  
  문 신부는 낡은 집을 전세로 빌려 지난 2006년 '평화바람 유랑단'을 했던 이들과 함께 살고 있다. 요새 보기 힘든 연탄난로로 훈훈한 방안에는 대추리에서 보았던 많은 물건으로 가득했다. 마당에는 대추리에서 데려온 강아지들이 뛰어놀고 있었다.
  
  기자를 만나자마자 "집이 누추해서 어쩌냐"고 묻던 문 신부는 "집도 없이 왔지만 사니까 살아지더라"고 슬핏 웃음을 지어보였다. 3시간 30분에 걸친 긴 얘기가 시작되었다.
  
  "대추리에서 내 발로 걸어나온 것이…"
  
  프레시안 : 전북 익산 '작은 자매의 집'에서 은퇴한 이후 군산에 와 계신지 몰랐다. 미군기지 확장 반대 운동을 다시 시작하려고 온 것인가?
  
  문정현 : 내가 1997년 미군기지 반대 운동을 시작한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군산엔 공항이 없고 미군기지의 활주로를 빌려서 쓰는데 당시 민항공기의 활주로 사용료를 올린다고 해서 '민항공기 사용료 인상 거부 운동'을 시작했다.
  
  이때 한미 관계가 불평등하다는 것과 그게 소위 '소파(SOFA)'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우리 땅을 무상으로 사용하면서 사용료, 보수료를 내라고 하고 5년마다 재협상으로 값을 올리는 문제, 소음 문제, 오·폐수를 내버리는 문제 등이 눈에 띄었다. 그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소파를 개정해야 한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그래서 서울에 올라갔다.
  
  그때 147개 단체와 함께 '불평등한 소파 개정 국민행동'을 꾸렸는데 그때만 해도 시민의 호응이 참 좋았다. 매향리 폭격장 문제, 맥팔랜드 포름알데히드 방출, 파주 스토리 사격장 문제 등이 여론의 관심을 끌게 되고 결정적으로 효순이, 미선이 사건까지 있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문제를 알게 됐다.
  
  그러고 나서 미국의 군사 재편에 따라 평택 대추리 땅을 내놓으라고 해서 대추리에 들어가서 한 2년 반을 살았다. 최선을 다했지만 정부가 완전히 종속된 상태이기 때문에 결국…. 그런데 군산으로 다시 돌아오니 또다시 반복이네. 대추리 못지 않게 심각하다. 좀 쉬려고 했는데…. 사실 내가 여기 와서 무슨 힘이 있겠나. 그렇지만 내 눈으로 지켜봐야겠다 싶었다.
  
  프레시안 : 평택 대추리는 결국 미군기지 땅으로 수용됐는데, 벌써 많이 잊혀진 것 같다.
  
  문정현 : 그 때 너무 처절했다. 내가 너무 견딜 수 없는 것이 대추리 땅 뺏기고 절대로 내 발로 걸어가지 않겠다고 공언했었는데, 주민들이 대화에 응하고 스스로 나가고 해서…. 주민들이 다 나가고 내가 그 뒤에 나오긴 했지만 내가 내 발로 걸어나온 것이, 그것만 생각하면 아주 가슴이 아프다.
  
  지난 8일에 재판이 있었다. 나는 '평택 미군기지 확장 저지를 위한 범국민대책위원회' 상임대표로서 평택 지원에서 재판 받고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받았다. 검사나 변호사 심문에 응하지 않고 재판부가 알아서 하라고 했다. 다만 '한상렬이나 정광렬 등은 아무 죄가 없다, 내가 대추리에 상주하면서 총 지휘했다'고 했다. 재판부야 하는 말로 들었겠지만 '죄를 물을게 있다면 내게 물어라'고 했는데 다른 사람들은 벌금형으로 나왔다.
  
  대추리에도 몇 번 갔다. 들판에 곡식이 그렇게 잘 여물어서 청둥오리들이 배가 불러터져서 날아갈 줄을 모른다. 들의 곡식을 수확 못 하니 새들이 구름처럼 몰려있다. 한번 가보라. 아주 장관이다.
  
  프레시안 : 견딜 수 없이 가슴이 아프다고 하셨는데 이렇게 또 미군기지 확장 반대 운동을 위해 군산으로 오셨다.
  
  문정현 : (잠시 침묵하다) 아닌 것은 아니지 않나. 이래서는 안 된다. 이것은 전국민적인 힘이 모여야 해결이 되는 문제고, 이런 사례들은 놓치지 않고 모아서 이겨나가야 하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 대접 받으려는 것은 당연하니까. 이기고 지고를 떠나 완전한 인권을 위해, 짓밟으면 짓밟히는 대로 해가는 수밖에 더 있나.
  
  프레시안 : 한동안 서울에 올라올 생각은 하지 않으시는 것 같다.
  
  문정현 : 서울? 너무 많이 올라다녔지. 올라가서 국방부, 미8군, 미국대사관. 광화문 시민공원, 청와대 앞…. 1997년 이후니까 벌써 10년인데 그 일대는 골목골목 훤하지 뭐. 그 노상에서 잠을 잔 것만 해도 얼마인데.
  
  "대운하, 한마디로 '강간'이다"
  
  프레시안 : 하지만 이른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나면 한미관계도 변화해 미군기지 확장 반대 운동도 더 어려워질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대운하를 판다고 하는가 하면 교육 등 사회 전 영역에서도 대대적인 변화가 예고되는 상황이다.
  
  문정현 : 한 마디로 크게 잘못 돼가고 있다. 어떻게 보면 민중은 굉장히 맹목적이다. 경제, 한미동맹, 그냥 확 쏠린다. 언뜻 보면 '경제 논리'만으로 살 수 있을 것 같으니 확 쏠려서 이번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된 건데 나는 시간 문제라고 본다. 지금 방향에 대해 '이거 아닌데' 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경제 논리만을 가지고 어떻게 사나. 사람답게 사는 것이라야 사는 것이지. 가지고 누리는 것만으로 사람이 사는 게 아니다.
  
  한미관계도 그렇고. 동맹이란 사람으로 인정 받는 가운데 줄건 주고 받을 건 받아가면서 공정하게 해야하는 것 아닌가. 종속도 좋다는 건가? 대한민국을 팔아서 한 주로 만들어버리지 무슨 동맹인가.
  
  영어 이야기가 자주 나오던데, 문화가 무엇인가. 생존하기 위한 방법이고 행복해지기 위한 방법이다. 지형, 문화에 따라 언어도 쓰게 되는 것이다.
  
  영어가 붐이라지만 (기자들이 가리키며) 귀하들도 너무 늦었다. 영어로 감정을 표현하기엔 너무 늦었다. 머리에 '드라이브'가 있다고 치면 어려서부터 영어를 공부한 사람들은 머리 속에 '한국, 영어' 드라이브가 두개라 접속하는 대로 되는 것이고, 다 큰 사람들은 방이 하나인데 한글도 넣고 영어도 집어넣고 하니 두개가 충돌이 일어나서 안 되는 것이다. 특별한 사람들도 있지만 95%는 안 되는 일이다.
  
  그런데 맹목적으로 영어만 추종하면 우리 것도, 영어도 병신된다. 우리의 정체성이 뭐냐는 데서 생각해야 할이다. 걱정되는 일이다.
  
  하지만 내가 유신 독재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봤지만 18년 만에 저절로 무너졌다. 지금? 다들 문제라고 하지만 유신독재보다 독하지 않다. 문제는 '아니면 아니고, 그렇다면 그렇다'고 이야기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렇게 자기 존재를 가지고 사는 것이 행복 추구다. 그렇지 않고 먹고 사는 데만 신경 쓰면 개, 돼지와 다를 게 무엇인가. 짐승 비하가 아니라 그보다 나은 삶이라는 게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프레시안 : 다른 것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당장 경부운하를 착공할 것으로 보여 걱정들이 많다.
  
  문정현 : 기술이 자꾸 향상이 되니 사람들이 하지 말아야 할 것까지 자꾸 하게 된다. 포클레인으로 길을 파고 산을 무너뜨리고 말이야. 비행기를 타고 상공에서 보면 파헤치지 않은 곳이 없다. 지금도 과한데, 대운하? 나는 오래전부터 '자연이 화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나는 '강간'에 비유하고 싶다. 자연엔 은밀한 곳도 있는 건데 완력으로 껍데기를 벗겨버리고 하고 싶은대로 누리고. 강간을 당하는 여성 못지 않게 자연의 한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거 분명이 무슨 일 난다.
  
  또 이 땅 산천은 인간의 문화를 담고 있는 것 아니냐. 파면 어디서나 문화유산이 나온다. 하나하나가 인간의 발자취다. 이런 것을 무시하는 동네가 뭐가 잘 되겠나. 전국토를 강으로 연결시킨다? 이건 강간이다. 완전 강간이다. 무슨 재앙이 올지 모른다.
  
  그리고 경제 논리를 내세우던데, 곰곰히 생각해봐야 한다. 결국 그 이야기는 지금 우리나라가 보유하고 있는 포클레인 같은 장비들. 그것이 놀지 않고 돌아야 경제가 돌아간다는 이야기 아니냐. 그러면 그렇게 대운하를 판다고 치자. 그럼 대운하 파고 나면 그것들이 쉬면 되나? 더 해야 할 것 아니냐. 언제까지 인간의 욕심을 채울 것이냐는 이야기다. 혹여 이명박 시대 동안 그런 기계들도 돌고, 돈도 돌면 경제발전이 됐다, 그럴 수 있겠지. 그러나 그건 눈가림 밖에 안되는 거다. 큰 일 날 일이지.
  
  기후 변화는 무섭지 않나? 산천이라는 것은 역사와 시간의 흐름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다. 시골 마당에서도 물을 함부로 다뤄서는 안 된다. 처마에서 떨어지면 그 물이 스스로 내려가기 좋은 곳으로 골을 만들어서 배수가 되는 것인데 인간이 그것을 막으면 그냥 부엌으로 들어가게 된다. 물길은 인간이 과학적으로 어떻게 풀 수 없을만큼 오랜 시간 동안 이뤄진 것이라 굉장히 중요한 것이다. 강줄기가 이렇게 흐르는 걸 저렇게 바꾼다? 무슨 재앙을 당할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순리대로 살아야 한다. 그런데 지금 뭐, 완전히 역행하고 있는 거지.
  
  인간이라면, 절제를 해야한다. 가지고 있다고 무절제하게 쓰는 게 인간이 아니다. 쓸 만큼 쓰고 나눌 만큼 나누고 도와줘야 하는 거지, 어디까지나 자기 욕심만 채우는 건 그냥 멸망의 길로 가는 것이다. 지금 까는 것만 봐도 무서운데, 이미 과하다. 이미 과해.
  
  프레시안 : 이명박 정부가 미국의 미사일 방어(MD) 시스템에 합류할 가능성도 높게 점쳐지고 있다.
  
  문정현 : MD, 오래전부터 있었던 이야기지. 평택만 봐도 알 수 있듯 이제 과거의 주한미군과는 전혀 다른 미군이다. 이것은 지구촌의 군사 시스템이고 군산 공군기지만 해도 이탈리아의 아비아노 공항에서, 독일에서, 괌과 하와이에서, 알래스카에서 날아와 이곳으로 온다. 지구의 이쪽에서 저쪽으로 움직이는 연습을 하는 거고, 인공위성 띄워서 지대공, 해대공, 공대공으로 어디서 날아오는 거 떨어뜨린다는 것 아니냐. 그럼, 미국만 개발하고 중국과 러시아는 가만히 있나? 우주항공, 러시아가 엄청난 기술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틈바구니에서 죽을 수밖에 없는 거다. 우리는 이걸 막아야 하는 건데….
  
  "이름 석자 대면 알 만한 사람들, 10년 헛살았지"
  
  프레시안 : 지난 대선 결과가 보여주는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움직임을 막을 만한 정치세력이 없다. 이번 총선에서도 한나라당의 압승이 예상되는 상황인데, 진보·개혁 세력이 왜 이런 처지에 놓이게 됐을까.
  
  문정현 : 군사 독재 정권이 무너지고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런 길로 간 거다. 우리가 인권, 통일, 민주화를 부르짖고 했는데, 그게 지금 필요가 없는 건가? 아니다. 지난번 대추리 땅 빼앗는 것으로 보고 '아, 민주주의는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토지수용법'라는 게 독재정권이 만들어낸 법 아니냐. 한마디로 나라에서 필요하다고 나라에서 금 그어놓고 '중토위'라는 걸 만들어서 일방적으로 공탁하고 뺏어오는 거다. 땅 뺏기는 사람은 조금도 권리 주장할 틈이 없다. 이게 무슨 민주주의냐. 우리가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지만 민주주의를 해서 소위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도 생겼지만 군사독재의 요소는 그대로 지니고 써먹는 것 아니냐.
  
  사실 나로서는 같이 아스팔트에서 데모하고 지역 사회도 같이 한 사람들 아니냐. 그런데 정치에 발을 디디면서 그때까지의 사람이 아니더라. 국가보안법도 폐지시키지 못하지 않았나. 이 사람들이 달라져 버린 거다. 나는 돌아보면 혼자서 내 볼기를 치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지만 그것 하나는 하지 않았다. 절대로 권력의 언저리에, 어떤 관변단체에도 가지 않았다. 내가 내 신분을 지키고,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도 나는 남아 있어야겠다고 생각했고, 남은 자가 되자고 다짐했다. 어디에 남느냐. 당시 사회에 가장 밑바닥에 있는 노동자, 농민, 도시 빈민, 장애인들, 이들과 함께 머물러 있어야겠다고 했다. 내가 그걸 지금까지 지켰다.
  
  봐. 내 생각에 지금 재야에서 수장을 해야 할 친구들이 정치권에 들어갔다. 누구는 총리로, 누구는 장관으로. 그러나 이 놈이나 저 놈이나 똑같이 되고. 내가 물었다. 너희들은 무엇이냐. 기성의 부패한 정치인들과 차별되는 게 무엇인가. 똑같이 패거리고, 너희 이익 챙기고 있는 것 아니냐. 우리가 무엇을 보고 지지해야 하느냐고 했다. 그 친구들이야 '매도'라고 하든 똑같은 건 사실이다. 어찌보면 민주노동당까지도.
  
  오만했지. 오만했어. 노무현 정부만 하더라도 그 사람이 한나라당하고는 차별이 있었겠지만 자기 능력으로 한나라당까지도 같이 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 오만했다. 그만큼 자격 미달인 것이고 세상 간단하게 본 거다. 그러다 보니 연정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것이고, 국가보안법도 한나라당하고 같이 가야 한다며 할 수 있는 것도 안 한 것 아니냐. 그러다보니 이놈이 그놈 되고 그놈이 이놈되고. 정말 꼴값을 한 거다.
  
  누가 이 사회에 가장 고통스러운 사람들인가. 비정규직 노동자들. 과거에 없던 것이 생긴 것 아닌가. 누가 만들었나. 그 사람들이 만들었다. 한나라당이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하던데 이 사람들이 10년간 누리면서 양산해 놓은 게 그거다. 얼굴 있으면 어디 내놔보라고. 당연지사지. 당연지사야.
  
  한 사람 한 사람 마음이 제대로였어야 했다. 한번이라도 데모했던 사람들은 지금 어디 한자리 없나 넘나보고, 그래서 아스팔트 벗어나고 허상을 찾아 헤매고 있다. 그러면서 마음은 썩어버리고. 누군가가 '과거의 동지가 왜 저러고 있느냐'고 하면 나는 그냥 무덤덤하게 그런다. '아, 그 녀석은 거기 가있냐. 그래서는 안되지…"라고 한다.
  
  (목소리를 낮추고 한숨을 내쉬며) 그러니까…, 이름 석자 대면 누구나 알 만한 그런 사람들, 10년 헛살은 거지. 10년 헛살은 거야. 이해찬, 김근태, 이철, 임채정…. 이철은 사형 선고 받았을 때 진짜 목숨 걸고 구출 운동했다. 허허. 그런 사람들 많지. 부지기수지.
  
  프레시안 : 그래서인지, 대안이 보이지 않는다며 암담해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 같다.
  
  문정현 : 그렇지만 우리는 주저앉을 수는 없는 것 아니냐. 이제 남은 자가 누구인가. 지금 가장 고통받는 사람들, 비정규직 노동자, 노동자, 도시 빈민, 장애인들이다. 여기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나는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는다. 1972년 세워진 유신체제가 완전히 힘으로 영구집권할 수 있었을 듯하지만 18년만에 스스로 무너졌다. 지금 시대는 유신 독재 체제보다 독하지 않다. 정도를 걷는 사람들이 많은 수는 아니겠지만 소수더라도 정예부대가 형성되면 '허브'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역사와 유구한 세월의 힘을 이야기했지만 인간의 지혜는 한정적인 것이라 이 엄청난 일을 이명박 정권에서 계획없이 급속도로 밀고 간다면 분명히 무슨 일이 난다. 그때 민중이 깨우치는 힘은 엄청날 수 있다.
  
  그 전에 우리 자신부터 변해야 한다. 평화를 조성하려는 힘이 자기 자신으로부터 나와야 한다. 깨끗한 마음을 지니고, 과욕 부리지 않고 남에게 해를 끼치기보다 도움이 되려고 하는 사람이 하나하나의 마음을 갖고, 내게 좋은 것만 추구하기보다 낮은 곳에서 어려운 곳을 돌아보고 애정을 갖고 무엇인가 하고자 해야 한다. 개인의 힘에는 한계가 있지만 해야 하는 것, 하고자 하는 것에 늘 동참하려 해야 하는 것이고, 형편 때문에 도움이 못된다 하더라도 항상 마음의 끈을 놓지 않고 '잘 되어야 할 텐데'라는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는 게 연대다. 관심과 참여와 연대의 마음. 너와 나는 하나다.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자연도 우리다. 우리가 다함께 소속돼 있고 함께 번영해야만 평화를 얻을 수 있고 행복해질 수 있다는 마음 가짐이 중요한 것이다. 자기 수련이 굉장히 중요한 거다. 여기 군산도 현장 아닌가. 땅 뺏기고 보상 못 받는 사람 많은데 도움 줄 게 있으면 주고 해야지.
  
  프레시안 : 남은 사람들이 연대하고, 시간을 갖고 밑에서부터 힘을 키워야 한다는 말씀이신 것 같다.
  
  문정현 : 자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 혁명가가 따로 있겠어? 모든 조건이 맞아서 터지면 그게 혁명이고, 거기 서있는 사람이 혁명가가 되는 거지. 우리가 감히 만들 수는 없지만 그러나 한사람 한사람 마음이 제대로 되야지. 이제, 새로운 시작이니까.
  
  '아스팔트 위에서 보낸 34년'
  
  프레시안 : 얼마전 전북 익산의 '작은 자매의 집'에서 원장직을 은퇴하셨다. 소회가 어떤가.
  
  문정현 : 따지고 보면 21년을 사회복지 쪽에 있었던 셈이 되더라. 시작한 건 우연한 계기였다. 1986년도, 전두환 정권 때 농민 수탈하는데 반대해서 농민 운동을 많이 하면서 전북 장서군 장개면 장개리 성당에 있었는데 거기서 정신지체 아이를 나무에 묶어 놓은 것을 보고 그 아이를 데려다가 먹여주고 입혀주고 함께 한 것이 시작이 됐다. 그러다 아이들이 늘어나서 익산으로 이사해서 본당 신부를 하면서 겸임으로 '작은 자매의 집'을 해왔다.
  
  지난 24일에 퇴임했는데, 사실 더 할 수도 있었지만 내가 그만뒀다. 원래 사회복지 시설 창설자는 정년제한이 없어서 더 할 수도 있었지만 이제 사회가 변해서 내가 하던 식으로 먹여주고 입혀주고 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더라.
  
  나는 '원시적인 배려'를 해왔던 건데 갑자기 '아, 내가 이들을 붙들고 있으면 안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각 대학마다 사회복지학과가 없는 데가 없고 점차 업그레이드가 되는 판에 나는 전념을 할 만한 바탕을 쌓지 못한 상황에서 말이지. 이쪽 일을 해보면 보건복지부 정책도 막 변하고 장애인 복지 모임에 나가보면 내가 가장 나이가 많아서 '아니다' 싶었다. 마침 내 보좌신부를 하던 친구가 사회복지 분야에 박사학위까지 딴 전문가인데 임명이 되서 '이제 됐다' 싶어서 은퇴를 했다.
  
  같이 지낼 수도 있었겠지만, 새 책임자의 주도 하에 뭐든지 이뤄져야 하는데 평생을 거기서 살다시피 한 사람이 옆에 있으면 아무래도 부담이 되지 않겠나.
  
  다 좋았는데 말이지, 20년 넘게 같이 지내던 애들과 헤어지는 것이 참 마음이 찢어지더라. 너무 마음이 아팠다. 미치겠더라 정말. 처음부터 애들과 떨어진다는 것을 생각했더라면 결정을 못했을 것 같다. 나로서는 큰 결심이었다. 지난해 9월 20일에 성당 주교님께 사의를 표한 다음부터 애들과 헤어지는 일이 그렇게 힘들더라고. 아 정말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프레시안 : 신부님께서는 1966년 성직자가 됐고 1974년 민청학련, 인혁당 사건에서부터 사회 운동을 시작하셔서 여기까지 오셨다. 전북 익산의 작은 자매의 집은 1986년에 시작해서 며칠 전 원장직을 은퇴하셨는데 이렇게 오랜 기간 사회운동을 하면서 '낮은 곳'을 지켜온 동력이 있다면?
  
  문정현 : 난 부모의 유산이라고 본다. 부모를 통해서 받은 그 신앙이지. 나 뿐 아니라 우리 형제들이 부모로부터 땅 한 평 받은 건 없지만 머리털 나기 전부터 아버지-어머니 모두 다 시골에서 이웃들과 더불어 사는 모습을 봐왔지. 예를 들면 어머니는 늘 없이 사는 형편에도 양식을 만들어서 '어느 집 솥 안에 넣어놓고 와라'고 내게 심부름을 시켰다. 또 스케이트를 만들겠다고 남의 대나무를 잘라왔더니 아버지가 불호령을 내려서 다시 용서를 빌러 가기도 했다. 이런 무수한 일들이 굉장히 큰 유산이 됐다.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큰 유산을 받았지.
  
  프레시안 : 신부님께서 쓰신 글 중 어머니를 회고하는 글에서 수감된 아들을 본 어머니께서 '아들, 김대건 신부가 되어야 해'라고 말씀하셨다는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문정현 : 어머니는 늘 머리맡에 김대건 신부 상을 놨다. 내가 치우면 그 자리에 또 두고 그러셔서 나중엔 치울 마음을 못 먹고 그대로 뒀다. 그런데 어머니가 돌아가시던 날 그 상이 깨졌다. 그래서 다시 사서 내 머리맡에 두고 있는데, 새 것이 깨끗하긴 하지만 어머니가 놔주시던게 바싹 깨져서 참….
  
  프레시안 : 신부님의 일생에 가장 영향을 미친 사람을 꼽는다면?
  
  문정현 : 최근에는 동화작가이셨던 권정생 선생이다. 오래전부터 글을 통해 알고있던 분이지만 돌아가시던 해 여름 직접 만나서 대화도 했다. 장례식도 지켜보고. 그 분이 내가 요즘 지향하는 바를 앞서서 사신 분이시다. 그 분은 마당에 잡초 하나도 함부로 하지 않고 살아온 그대로, 자연 안의 한 존재로서 사셨다. 그 분이 쓰신 '강아지똥' 유명하지만 이분이야말로 자연 속에서 동화에서 살다 가신 분이다. 참 이름없이 철저하게 살다가신 분이다. 내신 책 인지세도 아프리카의 굶주린 아이들을 위해 써달라고 하시고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셨다. 그게 참 조그만 것이지만 그런 게 싹터하는 것인데. 요새 그런 식으로 흉내내는 사람 많지만 그렇게 철저한 분은 드물다.
  
  종교적 측면에서는 예수님은 물론이고 성 프란체스코를 꼽고 싶다. 13세기 인물인데, 흔히 우리 교회에서 '환경의 주보'라고 모신다. 13세기에 환경을 생각하기 쉽지 않은데, 자연의 조화 속에서 짐승과 새들과 이야기하는 등 자연친화적으로 사신 대성인이다. 혹시 '평화의 기도'라는 글 들어봤나. 성 프란체스코의 시적인 기도인데 지금도 배울게 너무나 많은 기도다. 내 동생 문규현 신부가 북에 갔던 임수경을 데리고 왔을 때 임수경이 외우고 있던 기도가 바로 이 기도였다. 내가 그걸 듣고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프레시안 : 오늘 오랜 시간 말씀 감사드린다. 건강 조심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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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24일, 문정현 신부의 마지막 미사 소식을 들은 송경동 시인은 <프레시안>에 시를 보내왔다. 지난 2007년까지 문정현 신부와 함께 평택 미군기지 확장 이전 반대 운동을 했던 그는 "마지막까지 대추초등학교 옥상에 올라 가 있던 그 소박한 청청한 지팡이 하나, 그날 밤 선생이 앉아 계시던 그 낡은 흔들의자, 신부님도 울고, 아이들도 울었다는 그 '작은 자매의 집'이 떠오르며 정말 슬펐다"며 시를 쓰게 된 계기를 밝혔다.
  

황새울 그 마지막 밤의 노래
  
  마지막 불길이 되겠다고 했던 들지킴이 하나 깨끗이 태워주지 못한 우리는
  기차길 옆 공부방 아이들의 벽화 하나 지켜주지 못한 우리는
  파랑새 소녀를 평택호 쓸쓸한 공터에 내버려두고 온 우리는
  사랑을 잃어버린 우리는
  고향을 잃어버린 우리는
  만날 곳을 잃어버린 우리는
  
  순대국밥집에서 켄터키 후라이드 집에서
  철시의 시장 좌판에서 3차 4차로 서로의 속에 쓸쓸함을 더더하며 부어주던 우리는
  낄낄거리며 서로를 못 골려먹여 안달이던 우리는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떠나지 못한 평택의 밤 뒷거리에서
  지나간 회한의 청춘의 노래를 부르며
  어깨 걸고 작대기춤를 추던 우리는
  
  다시 대추리로 들어온 우리는
  빛나는 눈동자들이 남아 지키던
  캠프험프리 철책 옆 횃불의 노래 곁으로 돌아 온 우리는
  저 먼 어느 섬나라 자마이카에라도 온 듯 흥겨운
  아코디언의 노래에 맞춰 누구나 다 자신의 춤을 추던 우리는
  
  고물상 할아버지처럼 흔들의자에 앉아 있던 깡패신부님 곁에 무릎꿇고 앉아
  키득키득거리며 불경스러운 농을 주고 받던 우리는
  저 멀리 누구건 논둑에 앉아 사랑의 눈빛을 주고받던 우리는
  다시 어깨걸고 몇 번이고 기차놀이하던 우리는
  빈 집에 든 도둑떼들처럼 한 시절의 빛바랜 사진들, 거울대, 찬장이며 농짝이며
  다 타버리라고 불길 속에 던져넣던 우리는
  
  누구라도 나의 외로움을 받아주었으면 좋겠다고
  불꽃처럼 불길처럼 몸부림치던 우리는
  끝끝내 모두가 잠들어버린 마을을 돌며
  노래도 불러보다 꺼이꺼이 울어도 보다
  귀신처럼 마을을 돌던 우리는, 우리는
  
  떠나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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