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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택평화센터 2008-12-07 10:54:06 | 조회 : 8083
제      목  집떠난 주민들 "2년간 창살없는 감옥 사는 거야"_민중의소리
"대추리 마을 이름은 우리 자존심이여"
집떠난 주민들 "2년간 창살없는 감옥 사는 거야"

겨울이 막 시작된 3일, 평택역 앞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송화리 마을을 찾았다. 버스에서 내리자 머리 위로 헬기가 보인다. 커다란 굉음 소리를 내는 미군 헬기는 이후에도 여러 번 지나갔다. 헬기를 바라보던 눈을 아래로 내리자 ‘대추리’라고 쓰인 현판이 보인다.

“대추리 마을 이름은 우리 자존심이여!”

송화리에는 ‘미군기지 이전 예정지’라는 이유만으로 삶의 터전과 일터를 뺏긴 대추리 주민들이 살고 있다. 현판이 걸린 곳이 바로 대추리에서 쫓겨 나온 주민 40여 가구가 모여 살고 있는 포유빌라. 평택시는 대추리에서 3km 정도 떨어진 송화3리에 주민들이 임시로 살 거처를 마련했다. 주민들은 이곳에서 노와리 이주단지가 완공되는 내년 3월까지 살기로 돼 있다.

그러다보니 주민들은 지금 사는 곳에 마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내집’이 아닌 까닭이다. 거의 평생을 살다시피 한 집에서 강제로 내쫓겨 ‘임시 거처’에서 살고 있으니 정이 들 리 없다. 평생 흙을 밟으며 농사만 짓던 사람들에게, 농사도 짓지 못 하면서 아스팔트 바닥과 콘크리트 건물에서 지내야 하는 현실은 창살 없는 감옥과 다름없다.

“사람들이 그럽디다. 헌집에서 살다가 크고 넓은 새집에서 사니까 더 좋지 않느냐고. 그런데 한번 물어봅시다. 이쁜 여자와 2~3년 사는 게 좋겠습니까? 아님 평생 살아온 마누라랑 사는 게 좋겠습니까? 내 집도 아니고 어차피 남의 집인데 2년 동안 감옥에 사는 것과 마찬가지에요.” 포유빌라에서 만난 이정호(72세) 할아버지의 말이다.

그나마 빌라 입구에 ‘대추리’라고 쓰인 현판이 걸려 있는 것으로 이들은 위안을 삼고 있다. 땅도 집도 두고 나왔지만 끝내 버리지 못한 이름, ‘대추리’.

“대추리 마을 이름은 우리 자존심이여. 고향을 지키려 싸웠지만 끝내는 이렇게 됐네. 하지만 우리 마을 이름만은 절대로 내어 줄 수가 없어.” 주민들은 한결같이 ‘대추리’라는 이름을 버릴 수 없다고 말한다. 이들은 살던 마을을 떠나오면서 정부와 맺은 합의사항에 새 이주단지 이름을 ‘대추리’로 변경해 달라는 내용을 넣었다.

원래 이들이 살던 곳은 현재 평택 미군기지가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미군은 1952년 아무런 보상도 없이 주민들을 쫓아냈고, 쫓겨난 주민들은 아무것도 없던 휑한 땅, 버려진 갯벌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손발이 부르트고 갈라지도록 제방을 쌓고, 바닷물을 메우고, 돌을 골라내며 일군 농토가 바로 대추리 땅이었다.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짠물이 가득했던, 2천만 평에 이르는 땅을 옥토로 만들어 살아오기를 수 십년. 반세기가 넘는 세월을 보낸 땅이니 미군이 그 땅을 기지로 사용하겠다며 나가라고 했을 때 누가 쉽게 마음을 정할 수 있었을까? 그들은 자신들이 직접 바다를 메워 다진 땅을 떠나온 것이 가장 마음 아프다고 한다.

기지 이전 늦출 거면 그 땅 놀리지 말고 농사짓게 해 주면 좋잖아.”

빌라 105동 1층에 자리잡은 마을회관에 들어서니 스무 명 남짓이 모여 있다. 대부분 60~80대인 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텔레비전을 보거나 화투를 만지고 있다. 주민들은 이곳에서 소일거리 삼아 ‘친환경 수세미’를 만들기도 하고 점심도 함께 먹는다고 한다. 좀 전에 점심식사를 마쳤다며 밥은 먹었냐고 묻는 할머니들이 정겹다.

하지만 이내 면박이 날아든다. “기자들이 와서 만날 취재해 가면 뭔 소용이여? 보도가 제대로 안 되는데. 또 기사 나간다고 뭐가 달라지겄어? 우리도 결국 이렇게 쫓겨났잖아.” 주민들은 이제는 과거를 잊고 지내고 싶은데 자꾸만 기자들이 찾아온다며 마땅찮은 표정이다. 특히 ‘조․중․동이나 KBS’가 취재 오면 인터뷰에 잘 응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만큼 상심이 깊은 탓이다.

“인터뷰하고 나면 과거 생각이 나서 며칠 동안 잠도 못 자. 그래서 아예 잠 안 올 때 먹는 약도 지어 놨어. 여기 주민 90%가 고혈압 환자야.”

그래도 어떻게 사시는지 궁금해서 찾아왔다고 말하자 이야기가 한꺼번에 터져 나온다.

“대추리에서 쫓겨나 이리로 와서는 12일 동안 바깥 출입을 안 했어. 아니 속상해서 우느라고 못 했어. 눈물이 어찌나 나던지 열이틀 내내 울다가 나왔어. 지은 지 12년밖에 안 된 집인데 그걸 그리 허망하게 허물어 버리더라구.”

정덕례(81) 할머니는 대추분교가 철거되던 날, 그 안에 있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몰려 와 학교를 부술 때 나도 그 안에서 엉엉 울었어. 울 막내아들이 전화해서는 왜 거기 있냐고, 나오라고 하는데 나올 수가 없었어. 차마….” 벌써 2년 전 일인데도 그날 일을 잊을 수 없다고 말하는 정씨 할머니 눈이 붉게 변한다.

“지난달까지 시에서 알선해 준 공공근로한다고 이 나이에 길에 쪼그리고 앉아서 풀 깎고 다녔어. 공동묘지에 가서 키만한 풀이 가시랑 엉켜있는 걸 낫으로 자르고, 신작로에서 쓰레기나 줍고… 그렇게 일해서 겨우 80만원 받았는데 그걸로 어떻게 사냐고. 남들은 우리보고 돈 많이 받았다고 하는데 보상비 받은 걸로 새 이주단지에 땅 사서 집 지으려면 모자라도 한참 모자라지. 거긴 땅값이 비싸서 농사 지을 땅은 사지도 못해.”

“그러게 말여. 난 대추리에서 쫓겨난 다음부턴 온 몸이 다 아파. 다리도 아프고 속도 아프고. 평생 농사만 짓고 살았는데 이 나이에 어디 가서 뭘 하라는 건지 모르겠어.” 올해 일흔이라는 김양분(70) 할머니는 앞으로 살 길이 막막하다며 걱정이 태산이다.

“기지 옮기는 게 늦춰졌다며? 2019년에 옮긴다는데 그럼 그 때까지 땅 놀릴 거 아녀. 그럴 거면 우리 들어가서 농사짓게 해주면 좋잖아. 거기 땅이 얼마나 좋은데. 우리가 그 땅 만드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 우리가 키워낸 쌀은 말 그대로 ‘황금쌀’이었단 말여. 다시 그 땅에서 땀 흘리며 일해 보고 싶어.”

애초 미군기지 이전은 올해 말 완료 예정이었다가 2012년으로 한차례 늦춰졌는데 미군은 지난달 또다시 기지 이전 마무리 시점을 2019년으로 연기해 달라고 한국 정부에 요청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주민들은 “이렇게 십 년씩이나 늦출 거면서 왜 그렇게 우리를 일찍 쫓아낸 건지 모르겠다”며 울분을 토했다.

“평생 농사짓던 사람들, 그저 농사만 짓고 살 수 있게 해 달라고 했던 건데 그걸 못하게 하더니만. 우리 이렇게 내쫓고서 노무현이는 집 지어 들어앉아 있으니 생각할수록 화가 나. 노무현이나 이명박이나 다 나쁜 놈들이야.”

“힘든 일인데 왜 농사 짓고 싶어 하냐구? 이렇게 칠, 팔십 넘어서도 할 수 있는 일이 농사 말고 또 있겄나? 그리고 그 좋은 땅, 그 땅을 그리 놀리는 걸 보고 있으면 우리 농사꾼 입장에서는 한심스럽기가 그지 없어. 게 가서 보고 있으면 한숨만 절로 나와. 그 맴은 여기 다 같을겨.”

주민들은 미군기지 예정지를 세 구역으로 나눠 공사를 진행하기 때문에 공사 완료 시점인 2019년까지 노는 땅이 분명히 있을 거라며 국방부가 전향적으로 생각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주민들의 바람과는 달리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아 보인다.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송화리에 위치한 포유빌라 마을회관에서 대추리에서 쫓겨난 할아버지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다.
사진 더 보기 ⓒ 민중의소리

“지킴이들 생각하면 고맙고 미안하고 그래…”

마을엔 반갑지 않은 기자들만 찾아오는 건 아니란다. 주민들과 함께 마을을 지키기 위해서 싸웠던 일명 ‘대추리 지킴이’들. 2년여 동안 함께 살면서 정이 들만큼 들었던 그들이 여전히 주민들을 찾아 온다고 한다.

“참 많이들 고생했지. 죽어도 거기 대추리서 죽으려고 했는데 우리 때문에 젊은 사람들 더 이상 희생시켜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나오게 됐어. 대추리에 들어와서 천막치고 살던 사람들 생각하면 참 고마워. 그런데 그렇게 고생한 만큼 얻은 게 없어서 미안하기도 하고 그래.” 지킴이들 생각만하면 눈물이 난다며 할머니들은 또 한번 눈가로 손을 가져간다.

기지 이전 반대 싸움이 한창이던 때, 문정현 신부를 비롯해 많은 이들이 지킴이를 자처하며 대추리로 들어왔다. 사진작가도 있었고, 화가와 시인도 있었고, 학생들도 있었다. 물론 평범한 이들도 있었다. 일가족이 주소를 옮겨와 살기도 했다. 마을에 들어와 살지 않았어도 대추리를 지키기 위해 싸웠던 이들까지, 대추리를 지키기 위해 함께 했던 사람은 셀 수가 없을 정도다. 경찰에 연행됐던 사람이 자그마치 7백여 명이며 그들에게 떨어진 벌금도 4억여 원이었다. 그들하고의 아름다운 ‘동거’가 있었기에 그나마 주민들의 마음이 덜 황폐해졌을 것이다.

대추리 주민들, 그들이 바라는 건…

주민들은 마을을 지키기 위해 수 년간 싸우면서 몸이 지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마음에 상처가 크게 남아서 힘들어하고 있다. 그 어디보다 마을 사람들 사이가 좋기로 소문났던 곳이 바로 대추리다. 그러나 미군기지 이전 예정지로 확정되면서 그 좋던 사이에 금이 갔다. 정부와 협의해서 먼저 떠난 사람들과 남아서 끝까지 싸웠던 사람들 사이에 보이지 않은 감정의 골이 생겼다고, 주변에서들 이야기한다.

이렇듯 평생을 살던 고향을 떠난 서글픔에 알콩달콩 지내던 이웃을 잃은 슬픔이 더해져 이들의 마음엔 생채기가 났다. 무엇이 이들의 마음을 ‘치유’해줄 수 있을까?

“우리가 바라는 건 그냥 이렇게 한평생 같이 살던 주민들끼리 함께 농사짓고 살게 해 달라는 거야. 새로 들어갈 곳에 우리가 살았던 ‘대추리’라는 이름 달고서 농사짓고 살 수 있으면 그걸로 됐어.”

농사만 지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40여 가구 중 한 집도 빼놓지 않고 모두가 새 ‘대추리’마을에서 함께 살 수만 있으면 된다는 이들의 소박한 바람. 이 바람이 이뤄졌다는 소식이 새해 선물로 날아들기를 바라며 마을회관을 나왔다. 마을회관 안 쪽에서 할머니들 목소리가 들린다.

“시간 되면 놀러 와. 이왕이면 밥 때 맞춰서 오랑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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