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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택평화센터 2011-11-30 13:50:35 | 조회 : 6724
제      목  [기고] 한-미 FTA, 이대로 안되는 이유 / 김종철

지금 일본에서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교섭 참가 문제를 놓고 논쟁이 분분하다. 이 협정은 만약 일본이 참가하게 된다면 사실상 미-일 자유무역협정(FTA)이 될 가능성이 큰 통상조약이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좋은 참조사례가 될 것임이 분명하다. 한-미 협정의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일본이 미국과의 협상에서 무엇을 얻고 잃을지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적지 않은 논자들은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근거로, 일본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에 참여하는 것은 망국의 길로 가는 것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대표적인 논객은 통상관료 출신으로 현재 교토대학 경제학부 교수인 나카노 다케시이다. 그의 논점은 명쾌하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미국에만 일방적인 이익을 줄 뿐, 한국에는 ‘극도로 불리한’ 통상조약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산 공업제품에 대한 미국 쪽의 관세는 이미 충분히 낮고, 따라서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통한 관세철폐가 한국 쪽에 주는 이득은 사실상 무의미한 것임을 지적한다. 이처럼 무의미한 관세철폐의 대가로 한국이 얻은 것은 무엇인가. 한국 대통령이 미국의 국빈으로 초대되어 성대한 환영을 받은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게 나카노 교수의 결론이다.

그러나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정말 무서운 것은 이것이 단순한 무역자유화 협정이 아니라는 점 때문이다. 이 통상조약은 기본적으로 ‘미국적 표준’을 강요함으로써 한국 사회 고유의 가치와 풍습과 제도, 헌법적 가치를 근원적으로 무너뜨릴 가능성이 매우 높다. 지금 정부와 어용언론은 ‘괴담’이라고 치부하고 있지만, 오늘날 미국 사회는 가난한 사람들의 지옥이다. 예를 들어, 비싼 민간 의료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4500만 인구 중에는 기본적 치과치료도 받지 못하고, 집에서 펜치를 가지고 상한 치아를 제 손으로 빼야 하는 사람도 드물지 않다. 이게 초강대국 미국의 현실이다.

게다가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규정한 시장개방화 원칙에 따라 조만간 한국의 공적 보험과 상호부조 체계가 미국 보험회사들의 이익을 위해 해체를 강요당할 가능성도 크다. 금융, 법무, 특허, 회계, 전력, 가스, 수도, 택배, 전기통신, 건설, 유통, 고등교육, 의료기기, 항공수송 등 다양한 분야도 장래가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원래 한국 정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 협상을 개시할 때 내세운 주요 명분은 미국식 ‘선진’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서비스 산업의 경쟁력을 높인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미국에 대하여 거의 대부분 비교열위에 있는 한국의 서비스 산업은 전면적 붕괴라는 참혹한 사태에 직면할지도 모른다.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은 ‘투자자-국가 소송제’ 조항의 수용이다. 이것은 투자자의 이익 때문에 자국의 공공질서와 사회적 약자 및 자연환경을 보호해야 할 국가의 주권 행사를 근원적으로 무력화시킬 수 있는 치명적인 규정이다. 한국 정부는 이것을 미국에 진출하는 한국 기업을 위해서도 필요한 규정이라고 강변해왔다. 그러나 미국은 ‘한-미 자유무역협정 이행법’에 의해 자신의 주권 행사를 침해하는 어떠한 규정도 불법이라고 선언했다. 따라서 논리적으로 볼 때, 이 투자자-국가 소송제는 사실상 한국에만 적용될 조항이라고 할 수 있다. 국회의원들 중에서 이 문제를 파악한 사람이 있었을까?

나는 ‘국익’이라는 말을 싫어하지만, 한국의 정관계 상층부와 기득권 세력이 과연 ‘국익’이 무엇인지 판단할 능력을 갖고 있는지 매우 의심스럽다. 만약 그들이 조약의 내용을 잘 알고도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밀어붙였다면 용서할 수 없는 중죄를 저지른 것이고, 몰랐다면 그 무지와 만용은 실로 경악할 만한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국익’이라는 것은 공허한 말에 불과한 것일지 모른다. 이 조약을 밀어붙인 사람들이 실제로 염두에 둔 것은 한-미 어느 쪽이든 대다수 민중의 이익이 아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원래 인류사회에서 무역은 호혜적 교환을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콜럼버스 항해 이후 근현대사에서 무역이란 주로 강자가 약자를 수탈하기 위한 강력한 수단으로 기능해왔다. 지금 미국 경제는 바람 앞의 촛불이다. 이것은 대량실업, 양극화, 빈곤, 인권무시를 구조적으로 강요하는 신자유주의 정책노선에 기인한 것이다. 따라서 1%에게 집중된 부를 99%도 고르게 향유할 수 있는, 즉 더욱 정의롭고 인간적인 사회를 지향하기 위한 근본적 전환이 없는 한 미국의 미래는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미국 정부는 미국 자신은 철저히 예외로 하면서 타국에 대하여 완전개방을 강요하는 ‘자유’ 무역의 확대를 통해 활로를 찾는 구태의연한 방법을 고집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기억해야 할 게 있다. 그것은 지난 10월 ‘한-미 자유무역협정 이행법’이 미국 의회에서 통과될 때, 민주당 의원들은 찬성 57명, 반대 130명으로 대다수가 반대표를 던졌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민주당이 비교적 서민층을 대변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즉, 그것은 미국에서도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국민경제 전체보다도 특권적인 극소수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는 인식이 광범하게 존재한다는 증거인 것이다. 실제로 지금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통해 이미 절망 속에 신음하고 있는 한국의 농업이 사실상 끝장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국의 진짜 농민인 가족농들이 혜택을 볼 가능성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익을 보는 것은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막대한 정부 보조금을 받는 미국의 기업형 대농, 축산업자, 메이저 곡물회사들일 뿐이다. 다시 말해서, 미국이든 한국이든 종래의 불공정한 사회구조가 조금도 달라질 게 없는 것이다.

자유무역협정을 새로운 경제성장의 동력으로 삼겠다는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 중대한 문제가 있다. 그것은 이제 세계가 석유 및 자원 고갈, 에너지 위기, 기후변화, 환경파괴로 인해 사실상 경제성장이 불가능한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엄연한 현실이다. ‘발틱해운지수’라는 게 있다. 이것은 석탄, 석유, 광석, 곡물 등을 대량으로 운반하는 외항 화물선의 고용상황을 알려주는 세계적 통계수치인데, 수년 후의 무역과 세계경제가 어떻게 될 것인지 알려주는 지표이다. 이 지수는 2008년에 90%나 급감했다가 그 후 잠시 회복한 뒤에는 계속해서 침체를 기록하고 있다.

특히 앞으로 세계경제 상황에 미칠 결정적인 요인은 원유공급 문제이다. 오랫동안 피크오일(원유증산 한계점) 문제를 외면해왔던 국제에너지기구(IEA)도 마침내 2010년 10월 보고서에서 세계의 원유생산이 2006년에 정점을 지났음을 인정했다. 현대 산업사회는 지난 반세기 동안 한마디로 값싼 원유에 의존해서 성장을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그러한 값싼 석유시대가 지나갔다면, 이제 종래와 같은 성장은 불가능하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동안 농사마저도 대부분 석유에 의존했던 생활방식은 지금 획기적인 방향전환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시점에 이르렀다.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권이 붕괴된 직후 석유공급이 중단됨에 따라 일시에 사회 전체가 기능마비 상태에 빠지고, 마침내 비참한 대량기아 사태에 직면했던 북한의 상황은 이대로 가면 조만간 석유의존 사회 전체가 불가피하게 맞닥뜨릴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거의 대부분의 산업이 값싼 석유에 의존할 뿐만 아니라, 에너지 낭비 및 환경 파괴적 생활방식에 깊게 중독되어 있는 한국 사회가 그 상황에서 예외가 될 수 있을까? 이 엄중한 전망에 비춰볼 때, 한-미 자유무역협정이란 실로 시대착오적인 생존전략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피크오일과 자원-에너지-환경위기라는 사활적인 요인을 고려하지 않고 ‘진보’를 꾀하는 것은 망념일 뿐이다. 이제 갈수록 세상에서 중요한 것은 자립적인 식량-에너지 생산능력일 것임은 자명하다. 그런 의미에서 장기적인 활로는 농업 중심의 자급적·협동적 지역공동체 재건에 있다는 것은 길게 말할 필요가 없다. 수출만이 살길이라는 미망에 사로잡혀 유일하게 지속가능한 삶의 원천인 농사를 계속 깔본다면, 그 궁극적인 결과는 감당할 수 없는 비극일 것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폐기되어야 한다.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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